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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상담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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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ott Hubbard  /  2019-03-20

Photo by Adi Goldstein on Unsplash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잠 19:11). 평안한 순간에는 지혜자의 이러한 조언이 정말로 옳고 온당하게 들린다. 나에게 부당하게 행하는 자를 용서하는 마음은 얼마나 관대한가.

 

그러나 실제로 그러한 일을 당했을 때에는, 그냥 받아넘긴다든가 간과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사실 부당함의 정도가 얼마나 심한가는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오히려 배우자의 지속적인 핀잔, 상사의 불공정한 판단, 낯선 사람의 무책임한 태도 등의 사소한 일들도 마치 키가 장대한 아낙 자손과 같이 우리 앞에 거대한 산처럼 나타날 수 있다(민 13:33). 이러한 상황에서는 그 산에 눈이 가려진 나머지 주변 상황이 흐릿해 지고 오직 내가 당한 사실만 보이게 된다.

 

시간이 흘러 시야가 되돌아 오더라도, 우리의 영혼은 이미 손상 받은 상태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말에는 말로, 행동에는 행동으로 되갚아 주려는 욕망이 생겨난다. 겉으로는 분노를 통제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마치 화산이 폭발하기 일보 직전과 같은 상태를 경험한다 . 혹 조용히 가슴을 태우며 하루 종일 그 장면을 떠올리기도 한다.

 

하나님을 의식함

 

베드로는 정당하지 못한 상황을 매일 마주해야만 하는 크리스천들에게 편지를 쓰며,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벧전 2:19)라고 언급했다. 이는 잠언과 같은 맥락을 이루는 조언이다. 베드로는 “하나님을 생각함”이 우리가 크고 작은 부당함을 당할 때 이를 견디게 하는 핵심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부당한 일 그 자체에 집중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그 집중이 정말로 중요한 것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방해물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감정에 압도 당한 자신을 바라보는 대신, 하나님이 내게 어떠한 분이신가를 생각함으로써 자신의 눈을 그분께 향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부당한 일을 이기도록 훈련해야 한다.

 

베드로의 청중은 예수님을 따르는 일로 육체적 학대(벧전 2:20), 비방(벧전 4:4), 불시험(벧전 4:12)을 당해야 했다. 그들은 현대인이 일반적으로 겪는 부당함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심한 경우를 당하면서 이를 견디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심각한 악을 다루는 방법은 사소한 악을 다룸으로써 터득하게 된다. 그 예로, 비방을 견디는 일은 비아냥을 견디는 일에서 시작된다. 또한 행패를 견디는 일은 냉대를 견디는 일에서 시작된다. 매일 사소한 공격을 당할 때 하나님을 의식하도록 훈련하면, 최악의 상황이 닥치더라도 우리는 그분을 바라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의식할 때 우리는 어떠한 생각을 해야 하는가?

 

1. 하나님은 우리가 당하는 모든 부당한 일을 보고 계신다

 

옳지 못한 일을 당하면, 우리는 잠시나마 이 세상에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할 수 있다. 하나님을 의식한다는 말은 첫째, 하나님이 여기서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는 의미이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벧전 2:20).

 

이 세상의 아무리 작은 구석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도 하나님의 눈에 목격되지 않는 상황은 없다. 하나님을 의식하는 일은, 인생의 무대에서 감독(하나님)의 지휘를 놓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우리가 만물의 창조자이신 내 인생의 지휘자(하나님) 앞에서 살아 움직이며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일이다.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보시며 나로 하여금 바른 삶을 살도록 경고하신다(히 4:13). 하나님이 지켜보신다는 말은 누가 고통에서 놓임을 얻고 기쁨을 얻게 될 사람인지를 지켜보신다는 의미이다. 세상 사람들은 크리스천의 참을성 있는 인내를 보고 오히려 그런 자세를 약점으로 여길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인내를 보시고 우리가 그분의 소유인 귀한 자녀이자(벧전 2:10), 또 그분의 아들을 본받는 아름다운 자로 여기신다.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내려다보시며 “내 눈에 귀한 존재”라고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기회로 삼아보자.

 

2. 하나님은 우리가 당하는 모든 부당한 일을 허락하셨다

 

하나님은 드라마 전체의 감독자로서 우리가 당하는 부당한 일을 지켜보신다. 작든 크든 모든 부당한 일은 거대한 연극 시나리오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작가로서 '여러 가지 시험'에 해당하는 모든 말과 행동을 장면과 대사에 맞게 작성하신다. 그 시험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검증되어 더욱 굳건해지도록 말이다(벧전 1:6-7).

 

사실, 공격을 당했을 때 그 상황을 다루는 일은 크리스천으로서 감당해야 할 소명의 일부이다. 베드로는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다]”라고 말한다(벧전 2:21). 그런데 도대체 왜일까? 바로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기 때문이다(벧전 2:21). 예수님을 따른다는 말은 예수님을 본받는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고난 당하신 예수님을 본받는다는 말은 우리가 곤란, 괴로움, 공격 당하는 일과 분리될 수 없음을 뜻한다. 이러한 일들은 하나님이 그분의 덕을 선포하도록 우리에게 부여한 임무이다(벧전 2:9).

 

이와 관련하여 칼빈은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누가 부당하게 우리에게 상처를 주면, (고통을 심화시켜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그들의 사악함을 견디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대적이 우리에게 어떤 사악한 일을 자행했더라도 그 일은 하나님이 공정하고도 특별하게 허락하셨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을 수 있도록 하라”(기독교강요 1권 17장 8절).

 

하나님이 우리가 당하는 모든 부당한 일을 허락하셨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던진 단검은 결국 하나님의 손에 들려져 당신을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을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알기 바란다.

 

3. 하나님은 우리가 당하는 모든 부당한 일을 심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하는 부당한 일을 보고 계시며, 또한 그 상황을 우리에게 허락하시지만, 그와 동시에 악행을 결국에는 심판하시는 분이기에 우리는 고난을 견딜 수 있다. 크리스천은 예수님의 모습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열두 군단의 천사를 불러내실 수 있었지만 그대로 보복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자신의 고뇌를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의탁하셨다(벧전 2:23).

 

우리는 부당한 일을 당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언젠가 하나님의 아들이 검을 들고 이땅에 내려와 모든 교만한 자들을 내쫓고 온유한 자를 일으켜 주실 날이 올 것이다(계 19:15; 마 5:5). 그렇기 때문에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롬 12:19)라는 약속은 가장 심하게 학대를 받은 사람에게도 희망을 주기에 충분하다. 한편, 심판이 하나님께 속해 있으므로 아무리 부당한 일이라도 우리의 대응 방법에 대해 다시 한번 점검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큰 잘못만 바르게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작은 일까지도 심판하시므로 우리가 스스로 원수를 갚으려 할 필요가 없다.

 

내가 겪는 부당한 일이 태산 같든지 혹은 하찮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의 심판은 우리를 자유하게 하여 괴로움을 인내로, 응징을 자비로 바꾸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멈추지 말고 조금 더 깊은 사고를 해야 한다. 심판이라는 단어는 바로 하나님께 대항하는 우리 자신의 죄, 즉 예수님이 피를 흘릴 때까지 보복을 외치는 우리 자신의 죄를 생각하도록 만드는 언어이자 실제이다. 우리는 심판을 떠올리면서 만약 악을 행한 자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기꺼이 불쌍히 여기고, 혹은 크리스천이라면 형제애가 필요한 대상임을 상기해야 한다. 이를 통하여 심판은 우리 입에서 모든 자기 의를 제거하며, 그리스도처럼 “주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라는 간청을 하게 한다. 또한 심판은 되갚아 주고 싶은 우리의 ‘권리’를 내려 놓고, 공평하게 심판하시는 그분께 우리의 소송을 기꺼이 넘겨드리도록 한다.

 

우리가 부당한 일을 당할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당하는 모든 부당한 일을 보고 계시며, 그 일을 우리에게 허락하기도 하시지만, 결국에는 모든 악행을 심판하실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의식하는 사람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들은 부당한 일을 당하는 중에도 하나님이 그들을 만족시키실 수 있음을 신뢰한다. 우리에게는 공격으로 인한 씁쓸함, 복수, 자기 정당화를 향한 욕구가 일어날 때, 이러한 감정들에 압도되지 않도록 숨을 곳이 필요하다. 이때 말할 수 없는 기쁨과 넘치는 영광으로 우리를 채워 주실 수 있는 피난처는 오직 한 분이시다(벧전 1:8). 어두운 데서 우리를 다시 불러낼 수 있는 오직 한 분(벧전 2:9), 나를 영원토록 돌보시는 오직 한 분(벧전 5:7), 바로 하나님이시다.

 

만약 악을 악으로 대항하면, 우리는 그 대가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악을 견디는 법을 배우면, 우리는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벧전 2:25)와의 교제에 의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서 있는 지금 이곳에서 “잘 하였다”라는 그분의 속삭임을 들을 것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이 우리의 편협한 시각을 바로잡아 주시고, 마침내는 우리가 그분의 아름다움과 가치에 사로잡혀 부당한 일에 똑같이 대응하지 않도록 자유를 허락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출처: www.desiringgod.org (TGC 번역글을 가져왔습니다.)

원제: How to Overlook an Offense

번역: 정은심

이차 출처:https://tgckorea.org/bbs/board.php?bo_table=articles&wr_id=336&wr_1=생활&wr_21=감정+%28Emotion%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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